聖經 黙想/성경 인물
발람(민수기 22~24장)
Alma123
2011. 5. 16. 20:51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린 축복을 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이방인 선지자에게도 말씀하신 걸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초청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분명히 가지 말라고 하셨다.
[민 22: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발람은 특이하게도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선지자였던 것 같다. 아마 이 시대의 특성상 그랬을 것이다. 계시가 완성되지 않은 시대의 어느 정도 하나님의 독특한 섭리였을 것이다.
발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야 하는 자리에 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확실히 아니면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도, 발람은 또 다시 전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모압의 고관들이 찾아왔을 때, 마음이 흔들렸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게 확실하다면 더 이상 이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돌려보냈어야 했다.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발람은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사람들이 하룻밤 유숙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바뀌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발람은 이렇게 말했다.
[민 22: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발람의 원래 마음은 이것이 아니었다. 원래 발람의 마음은 그 앞절에 있다.
[민 22: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이런 말은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발람은 실제로 재물을 원했던 것이다. 그래도 영적인 독특한 신통력이 있어서 이방 선지자이긴 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발람이 종교적인 신통려을 가지고 재물에 무너졌다. 아니, 그 마음 자체가 재물에 무너져 있었다.
하나님은 두 번째 찾아왔을 때, 다르게 말씀하셨다.
[민 22: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일단 가도록은 하셨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 발람이 모압 왕에게로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광경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뜻은 아예 악의 자리에 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람의 나귀가 보는 것을 발람은 보지 못한다. 나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세 번이나 막으신 그 길을 발람은 끝까지 가려했고, 그 길을 방해하는 나귀에게 격노하기까지 했다.
이는 마치, 내가 내 마음대로 하는데, 내가 내 마음대로 죄 짓는데 그것을 막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 하더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태세였다.
그제서야 발람은 나귀가 먼저 본 여호와의 사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가지 않겠다는 입에 발린 말을 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 더 경고하시면서 발람이 가도록 하셨다.
[민 22: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이제 발람이 예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발람의 그 예언을 하나님이 주관하셨다. 이스라엘에게 내려지기 원하는 모압 왕 발락의 저주를 하나님은 발람의 입을 통하여 축복으로 바꾸셨다.
발람을 통해서 본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고도 신비롭다. 저주하려는 발람의 입을 하나님은 축복으로 바꾸셨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은 발람이 순전한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선지자였기 때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분명히 탐욕에 먼 종교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자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선포하셨을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절대 주권... 결국 답은 이것이겠지만, 이해하기 쉽지는 않은 문제이다.
(생각꺼리)탐욕이 가득한 종교 지도자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일까? 역사상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났다. 신사 참배할 때, 순결을 지킨 지도자들은 다 쫓겨났고, 교회를 지킨 목사들은 신사 참배에 동조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는 전혀 은혜가 전해지지 않았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이다. 현 교회가 이런 상황에 부딪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일종의 Donatus 논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