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썸네일형 리스트형 Frame 틀을 잡음으로써, 모든 지식과 정보들을 그 틀 속에 넣으면서도, 때로는 그 틀로 이것을 조정하기 힘들 때, 그 틀을 유연하게 변형시킬 수 있는 도구나 방법이 없을까? 이것을 언어학에서는 의미론(Semantics)의 분야에서 연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만, Intuition보다 Sensing에 익숙한 사람은 틀을 유연하게 변경시키기가 쉽지 않다. 더보기 안티들의 득세 시대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진정한 앎의 사람 흔히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박사 학위가 있고, 수 년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다. 전문적인 용어를 자유잘재로 사용하고, 복잡한 것을 개념화하는데는 이것이 도움이 될 지 모른다. 그런데, 만일 어려움을 모르고 큰 학문적으로 탁월한 어떤 사람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감옥에 가게 되어서 인생의 밑바닥에 처하게 되었다면, 그 사람의 앎은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 사람의 앎이 동료 죄수들의 앎보다 더 탁월할 수 있을 것인가? 동료 죄수들은 그냥 체념한 채로 감옥에서의 삶을 일상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사람은 감옥에서의 삶은 도저히 일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한 없이 원망, 불평, 걱정, 근심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누가 더 제.. 더보기 소통의 기쁨 생각하는 것이 같고, 아니 완전히 같을 수는 없더라도 분명히 지향하는 바가 일치하는, 그래서 서로가 다르더라도 그 차이가 괴로움이 되지 않고 기쁨으로 하나가 되어갈 수 있는 것을 만끽하는 기쁨을 어디다 비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소통의 귀결이 참된 진리에 이르는 것이라면 그것보다 기쁜 일을 찾을 수는 없다. 공동체이든, 개인간의 일이든... 이런 기쁨을 이어가며 사는 사람의 행복은 8복에 이어 나아가는 또 다른 숨겨진 제9의 축복이다. 더보기 설교의 어려움 설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설교자 자신이 그러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성경 말씀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어렵다. 삶과 전하는 말씀이 일치되지 않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설교자는 완성되지 못한 자신의 연약함을 붙들고, 적극적이고 치열한 Doing을 통하여 온전한 Being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매순간 다짐해야 한다. Being(삶)이 어렵다고 하여 Doing(설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더보기 짐 엘리엇의 일기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지킬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더보기 충동 충동은 급격하게 다가와서 평온한 영혼을 갉아먹으려 한다. 바쁠 때는, 일상에 쫓기도록 만들도록 계속 충동하여 정작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평온할 때는, 속에서 온갖 더럽고 무익한 것들을 하도록 충동질하여, 정작 평온할 때가 아니면 준비하지 못할 것들, 영혼의 평온을 유지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더보기 조급함 칼 융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마귀이다." 늘 조급함에 시달리지 않는가? 그래서, 실제로 하지도 못할 일을, 조급함 때문에 해야 한다고 보면서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더보기 기쁨의 원천 어떻게 낙심되는 순간에도 기뻐할 수 있을 것인가? 기쁨을 발견하고, 기쁨 속으로 들어가는 길... 존 파이퍼의 를 보면서, 낙심 속에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믿음, 기쁨을 명령할 것을 많이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바라보자. 더보기 찰나(刹那) 갑자기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금방 사라지기 쉽다. 그야말로, 열정이 있을 때, 이것이 잊혀지기 전에 그것을 기록에 담아두어야 한다. 그것이 기록으로 담겨지지 않으면, 그 생각은 금방 잊혀지고 만다. 이것을 영감이라고나 할까? 영감이 시초가 되어서, 이것이 체계화될 때, 훌륭한 책으로도 나올 수 있다. 순간은 영원에 잇대어 있다. 분명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지혜를 주소서. 더보기 이전 1 2 다음